이순신 장군을 왜 존경하냐고 물으면 대부분 비슷한 대답이 나와요.
"불굴의 의지요."
"뛰어난 전략이요."
"부하들을 아끼는 리더십이요."
그런데 저는 다른 시각에서 이순신 장군을 바라봤습니다. 그 시각을 연결시켜 준 것은 난중일기였어요.
우리가 이순신을 오해하고 있는 것
한국에서 이순신만큼 존경받는 인물이 있을까요. 역사 설문을 하면 항상 1, 2위를 다투는 이름이고, 광화문 한복판에 동상이 서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존경의 이유를 "인품"이나 "영웅성"으로만 설명하면, 뭔가 중요한 게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난중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어요. 거기서 난중일기의 내용을 일부 얘기해주는데, 듣다 보니 계속 이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 굉장히 데이터에 집착했었구나 !
전쟁 중에 일기를 쓴다는 것 자체도 이미 놀라운 일인데, 그 일기의 내용이 더 놀라웠어요. 날씨, 훈련량, 방문객 대화, 내일의 전투 계획. 빠짐없이, 체계적으로, 매일. 데이터를 쌓고 있었던 거예요.
"나는 보았으므로 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이순신 장군을 묘사하는 문장이 하나 있어요.
"나는 보았으므로 안다."
생각해서 아는 게 아니에요. 짐작해서 아는 게 아니에요. 보았으니까 안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당연한 말 같은데, 실제로 이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대부분 "아마 이럴 거야"로 판단하거든요. 직접 보지 않고, 데이터 없이, 느낌이나 경험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그런데 이순신은 전시 상황에서도 이 원칙을 지켰어요. 내일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적의 움직임을 추측이 아닌 관찰로 파악했어요. 그리고 그 관찰을 기록으로 남겼어요.
실증주의적 태도예요. 관찰 → 기록 → 판단. 이 사이클이 당연해야 한다고, 수백 년 전에 이미 몸으로 증명한 사람이에요.
이순신 장군만 기록을 한 건 아니지 않나
기록이 위인을 만들었다면, 조선 역사에 기록을 잘 남긴 사람이 이순신만은 아니었을 텐데 그들도 다 위인이 됐을까요? 찾아봤습니다.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자신의 언행과 학문을 일기로 직접 썼어요. 논어에서 증자가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를 돌아본다"는 말에 감명받아 시작했다고 해요. 기록하는 왕의 의지가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 국정 업무가 늘어나자, 결국 신하들에게 대신 쓰게 했어요. 직접 쓰는 걸 포기한 거예요.
유희춘은 방대한 일기 『미암일기』를 남긴 인물이에요. 1567년부터 1577년 죽기 직전까지 약 11년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친필로 기록했어요. 기록의 분량과 내용은 인상적이에요. 그런데 이 일기는 19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관직 생활을 하면서 쓴 거예요. 조정의 공무와 일상을 기록한 것이지, 전쟁터에서 쓴 것은 아니었어요.
임진왜란 때 다른 장수들도 진중일기를 남겼어요. 이정암의 『서정일록』, 사명당의 『진중일기』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이 기록들은 사건 전개를 묘사하는 데 집중돼 있어요. 날씨가 빠지거나, 감정이 없거나, 개인의 일상이 없어요.
비슷하게 기록한 사람은 있었어요. 그런데 내일 죽을 수 있는 전쟁터에서, 감정까지 포함해서, 2,539일을 혼자 멈추지 않고 쓴 사람은 이순신뿐이었어요.
정조는 왕이 되자 멈췄어요. 유희춘은 전장이 아니라 관직에서 썼어요. 다른 장수들은 사건만 남겼어요. 이순신만이 가장 극한의 상황에서, 가장 풍부하게, 가장 오래 기록했어요. 그리고 그 기록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었어요.
난중일기는 일기가 아닌 데이터
난중일기라는 이름부터 생각해보면 재밌어요. "亂中日記" — 난리 중에 쓴 일기예요.
전쟁하기도 바쁜데, 내일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일기를 쓴다는 게 말이 되나요? 게다가 그걸 7년 동안, 2,539일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요.
난중일기를 보면 매일의 구조가 거의 동일해요.
첫 줄은 항상 날씨예요.
맑음, 흐림, 비. 간단하지만 이게 중요해요. 해전은 날씨에 따라 전략이 달라지거든요. 파도가 높으면 판옥선 운용이 달라지고, 안개가 끼면 기습의 타이밍이 달라져요. 날씨 데이터는 그냥 일상의 기록이 아니라 전략 판단의 변수였어요.
그다음은 훈련 기록이에요.
활을 몇 발 쏘았는지, 어떤 훈련을 했는지. 단순해 보이지만, 이 기록이 쌓이면 "우리 병사들의 현재 전투력이 어느 수준인가"를 수치로 파악할 수 있어요. 느낌이 아니라 숫자로요.
그다음은 방문객과 대화 내용이에요.
누가 왔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고, 어떤 정보를 전달받았는지. 이게 현대식으로 말하면 미팅 노트예요. 이순신은 모든 대화를 기록해두었어요.
마지막은 내일의 계획이에요.
현재 전황이 어떻고, 내일 어떤 전투를 벌일 예정이고, 현재 계획이 무엇인지. 이건 파이프라인이에요. 현재 상황과 다음 액션을 연결하는 고리요.
날씨(컨텍스트) → 훈련량(팀 역량) → 미팅 노트(정보 수집) → 다음 계획(액션 아이템).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요? 지금 우리가 쓰는 CRM의 구조와 완전히 같아요.
이순신은 400년 전에, 종이와 붓으로, CRM을 만들고 있었던 거예요.
이순신의 기록에는 사건만 담기지 않았다
난중일기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순신이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이라는 거였어요.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무장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감정이 고스란히 다 나와요.
어머니 부고를 들은 날, 이런 문장이 나와요.
"어찌하랴, 어찌하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전쟁 중에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슬픔이 그대로예요. 장군이 아니라 한 인간이 쓴 글이에요.
그런데 저를 웃겼던 장면도 있어요. 친한 지인이 찾아와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날이에요. 재밌게 놀기는 했는데, 그 사람이 너무 말이 많아서 도무지 돌아갈 줄을 몰랐던 거예요. 그 날 이순신이 일기에 뭐라고 썼냐면 — 대략 이런 뉘앙스예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눈치가 없을 수 있지. 상대방이 싫어하는 기색을 눈치채고 빨리 집에 가야 하는데,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이렇게 사소한 에피소드까지 모두 기록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감정만 담긴 게 아니에요. 처벌 기록도 자세히 나와요.
한 석공이 전쟁에 쓸 도구를 만들기 위해 돌을 쪼는 작업을 했는데, 너무 시끄럽게 해서 동네 개들이 다 깨서 짖었어요. 이순신은 이 이유로 그에게 곤장을 쳤어요. 이동 중에 식량이 부족해진 병사들이 마을 사람들의 곡식을 무단으로 먹는 일이 있었을 때도, 곡식을 돌려주게 한 다음 곤장으로 다스렸어요.
처벌의 이유가 기록에 남았다는 게 중요해요. 무엇을 잘못했고, 왜 처벌받았는지가 투명하게 남아 있으니, "왜 나만?"이라는 억울함이 생기기 어려워요. 공로도 마찬가지예요. 잘한 일도 기록에 남으니, 공로가 흐지부지되거나 묻히지 않아요.
이순신의 기록은 사건, 감정, 평가, 처벌 근거까지 다 담았어요. 그게 기록을 풍부하게 만들고, 맥락 있는 판단을 가능하게 만들고, 조직의 신뢰를 만들었어요.
기록은 기억이 아니라, 판단의 근거다
기록을 "나중에 기억하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면, 이순신이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이해가 안 돼요.
바쁜 전시에 기억을 돕기 위해서라면, 굳이 그렇게 상세할 필요가 없어요. 간단한 메모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이순신의 기록이 힘을 발휘하는 건 복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에요. 전투가 끝나고 "왜 우리가 이겼나, 왜 졌나"를 분석하려면 당시의 상황이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해요. 기억은 왜곡되거든요. 이기면 잘해서 이긴 걸로, 지면 운이 없어서 진 걸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어요. 기록만이 그 왜곡을 막아요.
어제 날씨가 이랬고, 적의 움직임이 이랬고, 그 전날 전투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어요. 이 세 개가 쌓이면 "이런 날씨에는 적이 이렇게 움직인다"는 패턴이 나와요. 느낌이 아니라 데이터에서 나온 전략이에요. 이순신이 수백 년 전에 몸으로 알고 있었던 것 — 기록은 기억이 아니라, 판단의 근거예요.
수백 년 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어요
한국의 어느 B2B 스타트업, 세일즈팀 10명짜리 조직이에요. CRM을 도입했어요. 세일즈포스든, 파이프드라이브든, 뭐든요. 수천만 원을 투자했어요.
그런데 6개월이 지났는데, 팀장이 파이프라인을 보면 데이터가 엉망이에요. 미팅 기록이 절반도 안 들어가 있어요. 담당자가 바뀌면 그 고객의 히스토리를 아무도 몰라요. 영업사원들은 CRM을 열기가 귀찮다고 해요.
대표는 고민이 돼요. "왜 이렇게 CRM을 안 쓰는 거지?"
그런데 영업사원들한테 사실 물어보면 다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요.
"미팅 끝나고 나서 세일즈포스 열고, 레코드 찾고, 필드 채우고, 저장하고... 이걸 매번 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게 악의가 아니에요. 게으른 게 아니에요.
구조적으로 번거로운 거예요. 그리고 번거로우면 안 해요. 인간이니까요.
결국 CRM에 데이터가 안 쌓이고, 데이터가 없으니 파이프라인 예측이 안 되고, 예측이 안 되니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르고, 모르니 전체 세일즈 성과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돼요.
이순신이 난중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전황을 짐작으로 파악하고, 병사들의 훈련 수준을 느낌으로 평가하고, 적의 움직임 패턴을 기억으로 분석했겠죠. 적어도 지금 우리가 아는 이순신은 없었을 거예요.
세일즈팀도 같아요. 고객이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objection이 나왔는지, 어떤 시점에 deal이 식었는지 — 기록되지 않으면 그 미팅은 사라져요. 다음 영업사원이 같은 고객을 만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요. 데이터가 없으니 파이프라인이 안 보이고, 어디에 힘을 써야 할지 모르고, 열심히 하면서도 성과가 안 나와요. (AI 분석이 엉망이라고요? 문제는 AI가 아니라 데이터 파이프라인입니다)
저는 세일즈 CRM을 왜 써야 하는가를 설명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하지 않은 세일즈 활동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처음 이 문장을 쓸 때 이순신을 생각하면서 쓴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이게 정확히 이순신의 원리예요.
"나는 보았으므로 안다."
이 한 문장이 400년 전 전쟁터에서 적용됐던 것처럼, 지금 세일즈팀에서도 그대로 적용돼요.
본 것을 기록하지 않으면, 본 것이 없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기록이 먼저예요. 언제나.
우리 모두 기록합시다 !